2024년 4월 24일 (수)
(백) 부활 제4주간 수요일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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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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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09-20 ㅣ No.132631

 

사람의 몸보다 말과 글이 먼저 간다는 걸 느꼈습니다. 한인 공동체에 미사를 갈 때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피정 가거나, 휴가를 가면 제게 부탁을 합니다. 주말에는 시간이 있기에 가능하면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인사를 드리면 저를 아시는 분이 한두 분은 계십니다. 친구를 통해서 아는 분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저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발 없는 글이 인터넷이라는 도로를 타고 지구촌 곳곳으로 가는 걸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생각보다 젊다고 하시고, 어떤 분은 제가 생각보다 작다고 하시고, 어떤 분은 제가 생각보다 말이 없다고 하십니다. 저를 알아주시고,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분이 계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노인과 바다와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헤밍웨이는 어려운 시절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점심을 먹지 못할 때도 있었고, 공원의 벤치에서 밤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헤밍웨이는 글을 쓰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헤밍웨이에게 글을 쓰는 것은 삶의 목적이었고, 존재의 의미였습니다. 헤밍웨이는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도 늘 글을 써 왔고 앞으로도 글을 쓸 거야. 네가 할 일은 오직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을 써 봐.” 헤밍웨이가 위대한 작가가 된 건 그의 천재성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진실한 한 문장을 쓰려는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성 마태오 사도는 마태오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우리는 마태오 복음 사가의 글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애를 알 수 있습니다. 20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마태오 복음 사가의 글은 지금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글이 생각날까요? 예수님의 족보, 동방박사의 방문, 이집트로의 피난이 있습니다. 그 장면 장면들이 아름다운 문학의 소재가 되었고, 우리 삶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산상 설교에서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모습을 상상하곤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깊은 위로를 얻습니다. 더 높이 날려는 갈매기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하느님 나라의 비유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삶의 변화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는 예수님의 말씀, 나는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려고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부족한 저에게 위로의 말씀이 되었고, 제 삶의 지침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헐벗고, 가장 가난하고, 가장 아픈 사람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께서는 몸소 고통을 겪으심으로써 우리들의 고통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예수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의 의미를 체험하셨고,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태오 복음이 없었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삶을 이토록 생생하게 체험할 수 없었을 겁니다.

 

위대한 작가인 헤밍웨이처럼 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한 성 마태오 사도는 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가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도로, 예언자로, 복음 선포자로,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실 겁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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