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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노인은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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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노년이 아름답다.
어릴 적 동화책에서 등장하던 고목나무 밑에
지팡이 짚고 서 있는 산신령을 연상하게 된다.
기품 있는 얼굴엔 웃음 띤 환한 모습이다.
노인임에도 힘이 있어 보이고
그러면서도 인생을 달관한 도인의 자세이다.
원래 한자 노(老)는 허리 굽은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있는 모습을 본뜬 상형문자라고 한다.
그 자형이 많이 변해서인지 아무리 보아도
초라한 늙은이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글자의 인상은 매우 기품이 있어 보인다.
꼭 늙어 꼬부라진 사람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허리가 굽은 노인을 가리키는 문자였다고 한다.
돌아가신 분을 고자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인을 뜻했던 고자는 오늘날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으로
변하게 되었다.
우리는 노인이라는 말이 아직도 점잖게
그리고 권위 있게 들리는 나라이다.
노인이라는 말이 가지는 권위와 기품은
영어의 '올드맨'과는 또 다르다.
한국의 경우처럼 그렇게 위엄이있고 당당한
풍모를 한 노인들은 아마도 이 지상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효도관광의 띠를 두른 버스가 질주하고 있는 그런 도시도
세계에 없을 것이다.
역대 화폐 속에 나타나는 인물도
대개 노인이었음을 볼 수 있다.
우리생활에 모든 주요한 일을 관장하는 어른으로서
존경의대상이 되어 왔다.
그랬던 노인의 지위가
불과 반세기도 안 되는 기간에 무너져 버렸다.
이제는 힘없이 파고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한 여름 관악산 입구에 모여 앉아
화투치고 노래하는 노인들,
역시 하루 종일 화투치는 노인들,
버스나 지하철에서 버티어 앉아있는 젊은이 앞에
어정쩡하게 서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늙어지면 아무래도 달라지게 된다.
주름살이 지고 동작이 느려지고
아름다운 피부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옷도 깨끗하게 입고 소지품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생활하면 늙음 그 자체가 누추하고 보기 싫은 것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아무렇게나 해도 추(醜)하고 지저분하다는
말은 듣지 않지만 늙으면 조금만 몸가짐을 흐트러뜨려도 흉(凶)이 될 수 있다.
안 쓰는 물건은 잘 정리해 놓고, 주변을 깨끗이 해야 한다.
화려한 옷을 입는 것보다는 깔끔하고 정갈하며 몸 전체와의
조화에 신경 써야 한다.
산신령까지는 못 되도 화폐까지 못나온다 하더라도,
그래야 '어르신'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사외의 뒷전으로 물러 설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면에 나사서 설쳐 댈 필요도 없다.
자연스러운 곳에 스스로를 지켜 가면 된다.
감정을 앞세워 말하는 노인의 모습은 아름답지못하다.
느긋한 맛이 없이 서두르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되도록 천천히 침착하게 말하고, 말수도 가급적 줄이는 것이 좋다.
또한 늙을수록 표정을 잃기 쉬운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항상 여유 있고 부드러운 표정을 가지며 밝은 웃음을 웃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언어가 있듯이 노년에 어울리는 삶의 방법이있다.
젊은이와 꼭 같은 방법으로 미(美)를 추구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어떻게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갈 길이 아득하게 남아 있는 '과정'이다.
“노령을 인생의 황혼으로만 인식해서
석양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진리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도 있다.”
노화를 전면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우리가 지금 추측하는 것보다
건설적인 노년에 대한 비전을 형성하는 사람도 있다.
노년에 이르러 죽는 날까지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하며 바로 그것이 그들의 가장 오래 지속되는
유산이 돼야 할 것이다.
경직된 '인생의 세 가지 틀‘을 깨고 나올 필요가 있다.
노년기(老年期)에는 퇴직으로 삶의 형태를 못 박는 것은
점차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진짜 공헌을 할 수있는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우리사회에서도 은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
너그러우면서도 근엄한 존경받는 노인이 되자.
머지않아 나이를 먹는 것에 대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변하게 될것이다.
깨끗하고 너그럽고 그러면서도 여유가 넘치는 당당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흔히 노인이 되면 어린아이와 같아진다고 한다.
생각하는 노인이 되자.
그래야 늙어도 아름답다.
<생각하는 노년이 아름답다/김성순著 중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