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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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보다 이웃을 먼저 설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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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9-09-15 ㅣ No.132537

 


2019년 다해 연중 제24주간 월요일


<하느님보다 이웃을 먼저 설득하라>

 



 

복음: 루카 7,1-10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전쟁터의 바닷가에서 더위에 군복 상의를 벗어놓고 진지를 구축하던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옷을 바다로 날려 버렸습니다. 때마침 적기가 출현하여 공습경보가 울렸고 상관은 즉시 참호로 대피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병은 옷을 건지기 위해 상관의 명령을 뒤로하고 달려가 물속으로 뛰어들어 무사히 겉옷을 건져 가지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병사는 명령 불복종 죄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유죄판결을 받게 되고 마지막 진술을 하기에 이릅니다. 모든 잘못을 시인한 이 사병은 가만히 그 군복 주머니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제게 마지막 남은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제 생명보다 귀한 사진입니다. 명령을 어기는 줄 알았지만 저는 이 사진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저를 벌해 주십시오.”

 

재판정에 한 동안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재판장이 마지막 판결을 내립니다.

어머니를 이토록 사랑하는 병사는 조국도 그렇게 사랑할 것입니다. 무죄를 선고합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과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판사의 판결은 공정한 것이었을까요? 그의 마음 안엔 결국 사랑은 하나다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옳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미워하고 이웃에게 화를 내는 사람은 하느님께도 똑같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을 대하는 모습이 내가 실제로 하느님을 대할 모습과 같습니다.

 

 

유다인들은 로마인들을 싫어했습니다. 이방인이기 때문에 접촉을 해서도 안 되고 그 집에 들어가도 몸이 더럽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로마 군대의 백인대장을 변호하는 이들이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백인대장이 유다인들에게 얼마나 명망이 높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유다인들은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는 백인대장을 위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선생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실 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 민족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회당도 지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증언을 들이시고 그의 종을 고쳐주시기 위해 길을 나서셨습니다.

 

백인대장은 마음이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여기는 인물이었습니다. 속국의 백성들을 위해 그들의 종교를 잘 믿도록 회당까지 지어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랑 많은 백인대장을 이렇게 칭찬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그는 사랑과 겸손함의 사람이었습니다. 속국의 백성들을 사랑했고, 주님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하였습니다. 그러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주위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시고 당신도 사랑하는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이의 청은 주님께서 무엇이든 들어주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래서 혼자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만은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꼭 한 번만 만나자고 합니다. 저도 시간의 한계가 있는지라 그 사람을 만나야할지, 거절해야 할지 분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스스로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말한다면 결코 그 사람의 인품을 좋게 판단할 수는 없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했다면 이웃에게도 사랑받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요한 사도는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청할 때 이 말씀을 바꾸어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하느님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부활에 대한 증언은 예수님 자신이 아니라 그분을 목격한 제자들이의 몫이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다녔던 이들의 증언이기 때문에 예수님 본인의 증언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나 자신이 직접 설득하려하지 말고 주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증언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 나를 증언해 줄 사람들은 내가 함께 살아온 나의 이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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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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