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
(홍)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23)

스크랩 인쇄

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7-23 ㅣ No.131288

 

2019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화요일

제1독서 탈출 14,21─15,1ㄴ

그 무렵 21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주님께서는 밤새도록

거센 샛바람으로 바닷물을

 밀어내시어, 바다를

마른땅으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닷물이 갈라지자,

 22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23 뒤이어 이집트인들이

쫓아왔다. 파라오의 모든 말과

병거와 기병들이 그들을 따라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24 새벽녘에 주님께서 불기둥과

구름 기둥에서 이집트 군대를

내려다보시고, 이집트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셨다.

 25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집트

병거들의 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어, 병거를

몰기 어렵게 만드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

하고 말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바다 위로

손을 뻗어, 이집트인들과

그들의 병거와 기병들 위로

 물이 되돌아오게 하여라.”
27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뻗었다. 날이 새자

물이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도망치던 이집트인들이

물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이집트인들을

바다 한가운데로 처넣으셨다.
28 물이 되돌아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따라

바다로 들어선 파라오의

모든 군대의 병거와 기병들을

덮쳐 버렸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갔다. 물은 그들 좌우에서

벽이 되어 주었다.
30 그날 주님께서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이집트인들의

 손에서 구해 주셨고, 이스라엘은

바닷가에 죽어 있는

 이집트인들을 보게 되었다.

 31 이렇게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이집트인들에게 행사하신

큰 권능을 보았다. 그리하여

 백성은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다.
15,1 그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님께 이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하였다.

복음 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어제 평화방송에서의

방송 녹화를 마치고서 오랜만에

동창신부를 만나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저희 둘은

몸보신을 위해 닭백숙을 잘 하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5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집이고, 어제가

 마침 중복(中伏)이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더군요.

 아무튼 약간의 기다림 끝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그렇게

 친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뚝뚝했고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습니다.

전혀 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장님은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

 좋아하겠지만, 직원들은 싫어하는 구나.

 이런 모습을 손님들이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을 텐데...’
그래서 제가 더 적극적으로

웃으려고 했습니다. 한 번은 음식을

저희 식탁에 놓다가 직원의 손이

제 손에 닿게 되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니까 직원은 “왜 이렇게 깜짝

놀래요?”라면서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때 저는 “손이 닿으니 제 가슴이

설레서 놀랐나 봅니다.”라고 대답하자

웃지 않던 직원이 크게 웃습니다.

그 뒤로도 “음식이 너무 맛있어요.”,

“친절하게 서빙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등등의 말을 계속했지요.
식사 계산을 하고 이 식당을 나서는데

뒤에서 “또 오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이 말을 들은

동창신부가 이야기하더군요.
“이 식당에서는 또 오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자신이 행한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내가 행할 것은

생각하지 않고 받을 것만을 떠올립니다.

받는 것에만 집중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미쳤다.”라는 소문이 정말로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반가운 얼굴들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하면서 외면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갑게 맞이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은데,

어떻게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친척들에게

 그렇게 야박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즉, 세속적인 인연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보다

세상의 법칙에 선택의 기준을 둡니다.

그래서 주는 사랑보다 받는

사랑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행복은 우리가 어떻게

끝을 맺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시작하느냐의 문제이다.

또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느냐의 문제이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전국성지순례를 다시 시작합니다. 서울부터..)


책임감

어제는 평화방송국에서

북 콘서트를 했습니다.

월요일 한낮이었고 더군다나

폭염으로 너무나도 더운 상황에서

많이 오시기 힘들겠다 싶었지만,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방송국에

오셔서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이번 책을 출판하고서 벌써

세 번째 북 콘서트입니다.
사실 이렇게 북 콘서트를 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자리 잡습니다.

더군다나 많이 사람이 보고 듣는

 방송까지 한다는 것은 더욱 더

큰 부담입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제게 주어지는

책임감이 크기 때문이지요.
남들 앞에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감이 주어집니다.

그 책임감이 부담되어서 남들 앞에

서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그만큼 자신의 발전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결국 책임감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더욱 더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그 책임감을 받아들이셨으면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내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책임감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는 곧 내가 성장할 기회 역시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 아닐까요?

(방송 후 방청객들과 함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75 1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