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6일 (화)
(백) 부활 제3주간 화요일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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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스테파노, SDB(마음 깊숙히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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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07-16 ㅣ No.131139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마음 깊숙히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도시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을 향한

예수님의 초강력 경고 말씀은,

마치 오늘 저 자신을 향한 것 같아,

굉장히 송구스럽기도 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불행하여라,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벳사이다야!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 1121~23)

사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 주님으로부터

크게 저주받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고을들은 다른 고을들보다

주님께서 더 각별히 여기고

총애하던 고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컸던만큼,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 실망도 컸던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제대로 야단맞는

도시들을 바라보며,

오늘 우리 안에 좀 더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할 회개는

어떤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명저(名著)‘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을 통해 언어,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일깨우고 계시는,

존경하는 이기주 작가께서

최근 글의 품격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내셨습니다.

정신없이 읽어 내려가다가

참으로 감동적인 구절을 접했습니다.

작가께서 첫 직장에 출근하던 날,

설렘 반, 두려움 반,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출근해서 책상에 앉았는데,

가방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써넣어주신

편지 한장이 들어 있었답니다.

어머니의 문장을 접하자마자 작가의

가슴은 속절없이 내려 앉았답니다.

그동안 애썼다. 기주야.

그리고 고맙구나.”

작가는 당시의 감동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처음이라는 장벽 앞에서 설렘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며 걸음을

떼지 못할 때마다,

내 몸과 마음을 쓰다듬은 건

세계적인 석학의 조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건네준 따듯하고

단출한 문장이었다.

이 날도 그랬다.

어머니가 몰래 넣어둔 편지 한 장에

내 마음은 멈칫했다.

읽을수록 향기가 풍겨 나오는 문장에

난 진종일 붙들려야 했다.”

(이기주, 글의 품격, 황소 북스 참조)

우리가 매일 이웃들과 주고받는 언어가

좀 더 따뜻해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과 글에서

좀 더 예의범절과 품위가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언어와 글이 함께 걸어가는

이웃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언어 정화의 노력이야말로

주님께서 기뻐하실 아주 좋은 회개의

모습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언어의 온도에서 이기주 작가께서는

또 이런 명문장을 남기셨습니다.

말과 글은 머리에만

남겨지는 게 아닙니다.

가슴에도 새겨집니다.

마음 깊숙히 꽂힌 언어는

지지 않는 꽃입니다.

우리는 그 꽃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습니다.”

따지고 보니 회개라는 것,

너무 어렵게, 그리고 멀리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

, 글만 잘 성찰해도 아주 좋은

회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틈만 나면 섬뜩섬뜩한 폭언과

망언을 앞다투어 남발하시는 분들이

두분이 아닙니다.

국민을 대표하시는 분들,

공인들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성숙함이나 배려심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천박하고 유치해서

듣기가 참으로 민망합니다.

혹시라도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이

듣고 따라할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돌아보면 우리의 언어도

너무 날카롭습니다.

때로 상대방을 해치는 무기같습니다.

이웃들과 주고받은 대화 역시 마음과

영혼을 나누는 소통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의사 전달이나 일방통행식

대화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언어생활에 대한 대대적인

성찰 작업을 시작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예의바른 것인지요?

논리정연 한 것인지요?

상식적인 것인지요?

이웃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고

주님께는 영광과 찬미가 되는 것인지요?

따지고 보니 회개 중에 가장 우선적인

회개는 언어의 회개인 듯 합니다.

언어는 곧 그 사람 자체를 드러냅니다.

다시 말해서 언어가 곧 그의 인격입니다.

언어가 곧 그 인간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의 언어에 좀 더 품위와

품격이 가미되어야겠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SDB)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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