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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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권능으로 죄의 용서를 /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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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9-07-04 ㅣ No.130818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악한 생각을 품느냐?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라는 것 중 어느 게 더 쉬우냐? 이제 사람의 아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진 것을 알게 해 주겠다.” 그리고는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돌아가거라.”(마태 9,4-6 참조)’

 

대부분 병이 들면 내가 평소에 무슨 죄를 많이 지어서 이런가?’라며 자책한다. 믿는 이는 때로는 자신이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도 할게다. 그리고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는 세월도 보내리라. 예수님은 중풍 병자를 평상에 뉘어 당신 앞으로 데려오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얘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신다. 용서받았다는 건 하느님과 끊어진 끈이 다시 연결되었다는 거다.

 

용서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예수님은 죄의식으로 족쇄에 묶여 있던 병자를 자유롭게 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중풍 병자의 육체적인 치유보다도 죄의 용서에 관심을 더 가지셨다. 그에게 생명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건 육체적 질병에서 벗어나는 게 아닌 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구원이다. 중풍 병자가 걷게 된 것은 그가 죄를 용서받아 구원된 걸 드러낸다. 우리는 과연 어떤가?

 

건강함과 편안함을 그분께 청하면서도 정작 예수님께서 가장 큰 관심으로 바라시는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지 않는지? 우리는 삶속에서 회개로 죄를 용서받아 그분의 구원을 얻어야 할 게다. ‘사람의 아들이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새기면서. 사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불편한 것은 없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치유를 청하려는 것은 육체적 건강과 더불어 병으로 인해 비뚤어져 버린 마음의 죄를 용서받고 싶었기에. 병이 죄의 결과라고 여겼던 그들에게 치유는 하느님의 자비임을 모르지 않았으리라. 그렇지만 예수님의 권능을 무시하는 위선자들은 치유될 수 없는 병을 가진 이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하느님께만 유보된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능력을 자신들의 생각의 틀에 가두어 두려던 그들 앞에서 죄를 용서하는 행위가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음을 보여 주고자 하셨다.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라는 예수님의 치유는,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느님 능력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현실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죄를 용서받고 다시금 하느님의 축복 속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육신의 고통만을 없애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죄를 용서받아 하느님과 화해하여 영원히 그분과 함께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신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우리가 쓰는 말에는 하느님의 능력이 담기기도 하지만, 악의 권세를 퍼뜨리는 쓸모없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자. 참된 치유는 육체적 치유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까지 바꿀 수 있는 영적인 건강을 회복하는 것일 게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그를 살리시는 하느님 능력의 도구가 되는 것임을 늘 상기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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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용서,중풍 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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