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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출판사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공모전이 있어 써놓고 보내지 못한 글입니다.
읽어주실래요?
어찌할바를 모르게 덥고 짜증나는 여름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고3이었고 선생님의 감시에 붙들린 채
우리반 모두는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시골에서 전주로 유학온 나는
주말에 집에가서 밤새 한주간의 일을 조잘대고
엄마가 해주시는 밥먹고 아빠한테 어리광 한번 부려야
한주일을 사는 힘을 충전하는데
고3이 되어서는 몇주째 집에 못갔기 때문에
에너지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빈 하숙방의 쓸쓸함을 떠올리니 우울하기까지 했다.
교실과 내속을 흐르는 억눌림과 우울함을 떨쳐내고 싶었다.
중학교 과학시간에 했던 장난이 생각났다.
까만 종이를 잘라 이에 붙이고
자습하는 아이들을 쿡쿡질러 히---하고 웃으면 아이들의 웃음보는 터지고 만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그날처럼
담임선생님의 눈길이 잠시 빈틈...
벌떡일어나 뒤돌아 아이들을 향해 까만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난리가 났다.
책상을 치고, 배를 움켜쥐고, 서로의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찔끔거리고.....
천연덕스레 다시 입을 다물고 잠잠해질 무렵 다시 씩 웃고.....
난리통 속에서 나는 이상한 발견을 했다.
뒷문이 열려있고 누군가 팔장을 끼고 나를 보고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보니 아빠셨다.
"아빠!"
새까만 이도 잊은 채 아빠에게 달려갔다.
몇주째 딸을 보지 못한 아빠 역시 더이상 참지 못하고 딸보러 올라오신 것이다.
우리부녀는 이산가족 상봉마냥 끌어안고 뽀뽀를 하고 나는 울먹거리기까지 하는데
아이들은 이 감격스런 장면에서도 더 크게 웃기만 했다.
'아!..색종이....'
이에 붙인 까만 색종이를 떼어주시며 웃으시는 아빠....
내 장난기는 모두 '아빠대물림'이므로 나는 당당했다.
아빠손에는 통닭가방이 여러개였다.
'이건 친구들하고 먹고,이건 하숙방 친구 숙자랑 먹고,이건..저건...'
가방을 받아들고 교정 한 켠 나무그늘에 앉아 나는 그간 밀린 수다를 실컷 떨었다.
아빠는 말없이 웃으시며 자꾸 내 얼굴을 쓰다듬으셨다.
"예쁘게 살아라 . 내 딸. 고생스러워도 잘 참고..... 착한 딸"
코 끝이 시큰해서 더 수다를 떨었다.
행여 눈물방울이라도 떨어지는 날에는 폭포처럼 쏟아질 그리움을 막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남고 아버지는 털털거리는 변두리 시내버스에 오르셨다.
비포장도로 위 시내버스....
흔들 흔들 중심을 잡으시느라 애쓰시는 덩치 큰 내 아버지....
비틀 비틀 창밖까지 내밀어 흔드는 아버지의 큰 손....
털털 먼지를 일으키며 작아지는 버스...
작아지는 버스....
작아지는 내아버지.....
더이상 아까부터 참았던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울었다.
내 아버지가 차가 없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내 마음속 커다란 아버지는 품위있게 큰 자가용을 운전하고
멋지게 가셔야 어울리는 건데 ......
가슴이 먹먹해 왔다.
나무그늘아래서 힐끔 본 아버지의 흰머리가 생각나서 또 울었다.
이 봉지 저 봉지 통닭봉지를 나누면서 또 울었다.
대학 1학년 여름.
그 흰머리가 다 자라기도 전에 아버지는 가셨다.
털털거리는 버스로도, 멋진 자가용으로도 좆아갈 수 없는 먼 하늘로 아버지는 가셨다.
공무원 형편에 어렵사리 구했다고 좋아했던 중고 승용차 한 대가 아버지를 태운 채
영영 가버렸다.
꼭 1년만의 일이었다.
그 날처럼
아버지는 가셨고 나는 남았다.
그리움을 작은 가슴에 가르쳐 주시고 그 날처럼 작아져 이제는 사라지셨다.
그러나 이제는 울지 않는다.
다만 가끔 흰머리난 아버지들과 시내버스 안에서 마주치면
아버지의 흰머리르 뽑아드리고 싶어진다.
이 가슴아림이 그리움일까?
아버지는 조 규현 보니파시오이십니다.
기도해주실래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시도록...
남아있는 가족들 걱정 안하시도록....
그리고 전해주세요.
연이가 아빠를 너무나 사랑한다고.....
장난꾸러기 울보 세실리아드림.